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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승 — 이안 창이 카발란에서 고모로로 가져온 것

2026.10.05
小諸蒸溜所イアンチャン氏と、澁谷さん。バーリトルハピネスの店内にて会合

어느 오후, 저는 고모로 증류소의 마스터 블렌더 이안 창 씨와 마주 앉았습니다.

7월에 저희 바에서 테이스팅을 열기로 했는데, 그 전에 제대로 한번 만나고 싶다며 일부러 히로시마까지 와 주었습니다.

저에게는 오래전부터 묻고 싶었던 것이 산더미처럼 있었습니다.

왜 위스키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왜 카발란이었는지.

왜 그곳을 떠나 고모로를 선택했는지.

이안 씨의 “시작” 이야기 — 일본의 인터뷰에는 거의 나오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준비한 의제는 다 내던지고 그저 그의 인생에 대해 묻고 있었습니다.

이야기가 끝났을 때, 제 안에 남은 한 단어가 있었습니다. 계승 — 이어지는 것.

카발란, 고모로, 짐 스완 박사에게서 받은 것, 그리고 지금 시부야 씨에게 건네려 하는 것.

그가 들려준 모든 이야기에는 한 줄기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서 받고, 누군가에게 건넨다는 것.

그 이야기를 여기에, 제 말로 적어 두고 싶습니다.

히로시마를 찾은 고모로 증류소의 마스터 블렌더 이안 창 씨

시작은 우연이었다

이안 씨는 그 자신의 말로 하자면, 우연히 카발란에 입사했습니다.

중국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심한 뇌졸중으로 쓰러졌습니다.

몸 반쪽이 마비된 채 대만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시 이안 씨는 군 복무 중이었고, 어머니는 집에 돌아와 가족을 돌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집 근처에서 일자리를 찾았습니다.

카발란은 차로 20분 거리였습니다.

그것이 지원한 이유의 전부였습니다.

면접에 불려 가, 연이은 노징(후각) 테스트를 받았습니다.

그 자리에 지원한 사람이 많았을 텐데, 왜 당신이었을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제가 틀렸을 수도 있지만”이라고 전제한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영국에서 9년 동안 학생으로 지냈습니다. 스코틀랜드와 영국 사람들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으니, 그게 장점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네요.”

가족을 위해 집으로 돌아온 것.

우연히 가까이 있던 회사에 지원한 것.

이렇게 말하면, 철저히 수동적인 시작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그가 도착한 곳은 평범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이안 씨가 입사했을 때, 카발란은 아직 건설 중이었습니다.

증류소를 짓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

아무것도 없는 상태. 제로.

우연히 도착한 곳은, 무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곳이었습니다.

그 제로에서의 시작이, 훗날 그를 고모로로 이끌게 됩니다.


그는 숙성고 안에서 위스키와 사랑에 빠졌다

카발란에 들어가자, 누군가가 처음으로 그를 위스키의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그 사람은 글렌리벳을 비롯한 이름난 스코틀랜드의 증류소들에 그를 데려가, 포트 스틸이 빛나는 작업 현장과 숙성고 안을 보여 주었습니다. 끝없이 늘어선 오크통 사이로, 그는 들어갔습니다.

“너무나 로맨틱했어요. 판타지 속 장면 같았죠. 그래서 앞으로 나아가고, 절대 뒤돌아보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안 씨가 위스키와 사랑에 빠진 것은, 그 숙성고 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 기분을 너무나 잘 압니다.

만드는 이들도, 그저 팬일 뿐인 저 같은 사람도, 아마 같은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겠지요.

그 만남이 없었다면, 우리가 아는 이안 창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스승에게서 받은 것

그리고 그의 인생을 결정지은 스승, 짐 스완 박사가 등장합니다.

박사가 가장 먼저 가르쳐 준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위스키는 살아 있습니다. 다른 음료와는 다릅니다. 코카콜라는 레시피만 있으면 어디서든 같은 것을 만들 수 있죠. 위스키는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이 있는 곳의 기후, 조건, 물에 맞춰 만드는 방법을 바꿔야 합니다.”

만드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

스코틀랜드의 방식을 그대로 대만에 가져올 수는 없습니다.

온도도 습도도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 가르침이, 이안 씨에게 모든 것을 결정지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는 식품 화학을 공부했지만, 위스키의 핵심인 유기 화학은 강의에서 거의 다루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고생했습니다.

스완 박사는 바로 그 분야의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형태가 갖춰졌다고 느낀 것이 언제였는지 물었습니다.

이것이 그의 대답이었습니다.

짐 스완 박사와 함께,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의 스타일이 자리 잡기까지 약 10년.

그 세월은, 스완 박사에게서 계속 배우던 세월과 정확히 겹칩니다.

스승에게서 받으며 자신을 빚어 간 12년.

바로 그 세월 동안, 카발란은 세계 곳곳에서 잇달아 상을 받았습니다.

스완 박사가 늘 뒤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장 감탄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이안 씨와 동료들이 떠난 뒤에도, 카발란은 계속 상을 받고 있다는 것.

그렇게 말하자,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했습니다.

“다들 좋은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흔들리지 않는 거죠. 저는 스완 박사에게서만이 아니라, 카발란의 동료들과 함께 배웠습니다.”

배우는 힘. 다른 사람을 키우는 힘. 받은 것을 제대로 건네는 힘.

이안 씨가 카발란에 남긴 것은, 그가 없어도 계속되는 무언가였습니다.


제로에서 16살까지 키운 아이를 떠나보내다

그리고, 졸업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카발란을 떠나기로 결심했을 때의 기분을 물었습니다.

모든 것을 걸고 키워 온 것을 놓아 보내는 일.

그것이 평범한 결정이었을 리 없습니다.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카발란을 떠날 때, 정말 슬펐습니다. 카발란은 제가 무에서 키운 것 — 갓난아이 때부터 16살까지 키운 아기 같은 존재였어요. 아내도, 어머니도, 딸들까지도, 가족 모두가 무척 슬퍼했습니다.”

제로에서 16살까지 키운 아이.

그 한 마디 비유에, 그가 카발란에 쏟은 세월의 무게가 전부 담겨 있습니다.

그 아이를 두고, 손을 떼는 것.

가족 모두가 슬퍼할 만큼 큰 이별이었습니다.


모색 — “컨설턴트가 될까”

카발란 이후 그가 생각한 것은, 한 회사에 정착하는 것이 아니라 컨설턴트로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많은 만드는 이들과 일하며, 아는 것을 여러 증류소에 나눌 수 있으니까요.

제안은 실제로 들어왔습니다.

한 대기업은 자사 브랜드를 위한 증류소를 지어 달라고 그를 초청했습니다.

하지만 그 계획은 매우 신중하게 움직여서,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시작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계약 직전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팬데믹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일을 맡았다면, 제 인생은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에 없었을지도 모르죠.”

그는 이 무렵, 정말로 지쳐 있기도 했습니다.

1년에 200일 넘게 강연을 다니며 10년 동안 집을 비웠고 — 딸들이 자라는 모습조차 곁에서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팬데믹이 와서 해외 이동이 멈췄을 때, 조금 쉬고 싶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래도 멈춰 서 있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쉬려고 해도, 쉴 수 없는.

정해진 목적지도 없이, 그는 다음 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색의 한가운데에, 고모로 증류소가 나타났습니다.


고모로와의 만남 — 다시, 제로에서

“거의 완벽한 만남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운명적인 만남이었어요.”

이안 씨는 고모로를 만난 일을 이렇게 돌아봅니다.

다른 길도 가능했지만, 그를 일본으로 데려온 것은 이 길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짐 스완 박사는 하늘에서, 제가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늘 지켜봐 주고 계십니다.”

스승은 이제 세상에 없습니다.

그래도 이안 씨는 박사가 자신을 이끌며,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 준다고 느낍니다.

그가 받은 것은, 결코 위스키를 만드는 기술만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스승의 존재 그 자체가, 계속 길을 가리켜 왔는지도 모릅니다.

KDI와 고모로 증류소를 이끄는 시마오카 사장은 원래 금융계 출신입니다.

하지만 자신만의 증류소를 갖고 싶다는 강렬한 바람을 품고 있었습니다.

깊은 인맥과, 투자를 끌어오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만, 산토리를 탄생시킨 콤비 도리이 신지로와 다케쓰루 마사타카 같다고 말해 버렸습니다.

이안 씨는 웃으며 그 표현이 마음에 든다고 했습니다.

한 사람은 경영을, 한 사람은 만드는 일을.

역할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날 때, 새로운 위스키가 태어납니다……

“사장님의 강점은 인맥입니다. 그래서 투자가 모이고, 자금을 조달할 수 있죠. 제 역할은 위스키를 만들고, 다음 세대를 키우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아주 좋은 조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컨설턴트가 되겠다”던 생각이 예상치 못한 형태로 열매를 맺습니다.

처음에는 고모로에도 컨설턴트로 관여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면 다른 만드는 이들과도 계속 일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시마오카 사장은 그가 다른 회사와 일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함께합시다. 공동 창업자로 모시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이안 씨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 제안은, 이안 씨가 마음 깊이 품고 있던 것에 정확히 닿았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저도 제로에서 새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니 이건 완벽한 기회였죠.”

여러 증류소에 조금씩 관여하는 컨설턴트.

그것도 매력적인 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 그는 한 번 더, 무에서부터 자신의 손으로 무언가를 키우고 싶었던 것입니다.

카발란을 제로에서 세계적인 이름으로 키운 사람에게, 아직 그 갈증이 남아 있었습니다.

무에서부터, 아이가 자라는 것을 지켜보듯.

고모로는 그 “한 번 더”가 가능한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움직인 것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고모로라는 땅 그 자체입니다.

“나가노”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일본에서 사람들이 가장 장수하는 곳이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아주 건강한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고.

고모로 증류소는 해발 910미터의 숲속에 있습니다.

낮과 밤의 기온 차가 크고, 밤에는 제대로 춥습니다.

숙성도 그에 맞춰 — 낮은 지대와는 전혀 다른 속도로 천천히 진행됩니다.

위스키 만들기를 속속들이 아는 사람에게도, 고모로는 처음 겪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매일 메모를 하고, 최신 논문을 살피며, 새로운 지식을 탐욕스럽게 흡수하고 있습니다.

해발 910미터의 숲에서 천천히 자라는 위스키.

다시 한번 제로에서 마주할 가치가 있을 만큼 특별한 무대입니다.

만남은 필연.

제가 손님들에게 늘 하는 말이, 이안 씨가 걸어온 길 위에 그대로 겹쳐 보였습니다.

가능했던 수많은 선택 중에서, 그는 정확히 고모로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건네는 사람으로

고모로에서 이안 씨의 위치는 카발란 때와 다릅니다.

카발란에서는 블렌더로서 직접 손을 움직여 위스키를 만들었습니다.

고모로에서는 컨설턴트에 가까운 위치에 서 있습니다.

이어받은 것의 바통을 다음 세대에 건네는 곳.

그것이 고모로라고 그는 말합니다.

“사장님을 만났을 때, 짐 스완 박사의 노하우를 미래의 위스키 만드는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스승에게서 받은 것을, 이제 그가 직접 건넵니다.

그가 건네는 상대 중 한 명이, 그날 통역으로 함께 앉아 있던 시부야 씨입니다.

시부야 씨는 어류 면역학 박사로, 위스키와는 전혀 관계없는 세계에서 왔습니다.

하지만 온라인 면접의 화면 너머로, 이안 씨는 그에게서 무언가를 느꼈습니다.

“이 사람은 아주 좋은 다음 세대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일본에 온 뒤, 이안 씨는 시부야 씨에게 자신이 카발란에서 받았던 것과 똑같은 노징 테스트를 치르게 했습니다.

시부야 씨는 합격했습니다.

이안 씨가 한때 거의 아마추어로 시작해, 스승에게 발견되어 그 길을 걸었던 것처럼.

이제 이안 씨가 시부야 씨를 발견하고, 길을 보여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어 간다는 것은 지식을 전하는 것이면서, 똑같이 그것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 그것이 깊이 마음을 울렸습니다.

KDI는 지금 고모로에 더해 홋카이도에도 증류소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홋카이도 쪽은 고모로의 4배 가까운 생산량이 된다고 합니다.

이어받은 것이, 곳곳에서 다시 꽃피려 하고 있습니다.


나무를 심는다는 것

제가 이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은, 이 부분 때문입니다.

이안 씨는 위스키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위스키는 나무를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나무를 키우기로 결심하는 거죠. 나무가 크게 자라면, 사람들은 그 그늘을 즐길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은, 미래 세대가 즐기기 위한 것입니다.”

나무를 심기로 결심할 때, 자신이 그 그늘에서 쉬는 모습을 떠올리지는 않습니다.

그 그늘을 즐기는 사람은, 결코 만날 일이 없는 누군가입니다.

이안 씨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렇게 생각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일이 작년에 있었습니다.

시마오카 사장과 글렌파클라스를 방문했을 때, 그곳의 블렌더가 70년 숙성 위스키를 맛보게 해 주었다고 합니다.

70년.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시간입니다.

“고모로의 70년은 제가 살아서 볼 수 없습니다. 의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불가능하죠. 그러니 그건 미래 세대가 즐기기 위한 것입니다.”

그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70년 원액을 담근 블렌더도, 분명 스스로 마셔 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70년 전, 누군가가 결코 만나지 못할 세대를 위해 오크통을 채웠고,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그것을 맛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70년 전 누군가가 심은 나무의 그늘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글렌파클라스에서의 그 한 잔이, 이안 씨가 줄곧 품어 온 것에 분명한 형태를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하는 일은 결국 나무를 심는 것이라는 것.

이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저도 모르게 저도 똑같다고 말해 버렸습니다.

저도 손님들에게 늘 같은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위스키도 럼도, 만든 이의 마음에 닿을 때 더 맛있어집니다.

이 위스키는 시간을 건너온 선물입니다 — 과거의 누군가가 자신의 신념과 의지와 고집을 미래에 맡긴 것이고, 그래서 소중합니다.

그 모든 것을 통째로 맛보았으면 합니다.

이안 씨와 저는 전혀 다른 자리에 서 있습니다.

위스키 세계 전체가 우러러보는 전설과, 히로시마의 작은 바 주인.

그런데도, 우리는 같은 풍경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안 씨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건 우리의 철학과 같네요.”


인생은 짧으니까

지금 가장 즐거운 일이 무엇이냐고 묻자, 일본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시간이 나면 전국을 여행하며 풍경을 찾아다닌다고 합니다.

요즘은 호쿠리쿠에 빠져서, 거의 매주 주말마다 간다고.

지금의 장벽은 언어로, 생산이 안정되면 도쿄나 사이타마의 어학원에 다니며 일본어를 배우고 싶다고 합니다.

그가 평생 들어 온 말이 있습니다.

“인생은 짧다. 그러니 즐길 수 있을 때 즐겨라.”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낀 것은, 이안 씨는 안과 밖이 일치하는, 깊이 통합된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과, 하고 있는 일.

믿는 것과, 살아가는 방식.

의지와, 일.

그 사이 어디에도 틈도, 얼버무림도, 무리도 없습니다.

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도 않고, 편한 삶을 위해 의지를 굽히지도 않습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나무를 심는 것 자체가, 그를 채우는 방식입니다.

안과 밖이 하나의 선으로 깨끗하게 이어져 있습니다.

매슬로의 욕구 5단계로 말하자면, 자아실현의 단계를 사는 사람의 얼굴이었습니다.

생계를 위해서도, 명예를 위해서도 아닌 — 정말로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의 차분하고 단단한 충만함.

그에게는 모순이 없고, 그래서 무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예전에 다른 글에 이렇게 쓴 적이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사람인데도, 무대 위의 이안 씨는 옆의 증류 기술자들과 듣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을 한 번도 놓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런 태도를 지닌 사람이 만드는 위스키라면, 분명 하모니를 중심에 둔 아름다운 위스키가 될 것이라고.

그 점심 자리에서, 저는 왜 그렇게 느꼈는지 드디어 이해했습니다.

존중과 일관성은 같은 뿌리에서 나옵니다.

그의 안 어디에도 모순이 없기에 무리가 없고,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존중을 곧게 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조화로운 사람의 손에서, 조화로운 원액이 나옵니다.

만드는 이의 모습은 언제나 그대로 위스키에 드러납니다.

예전에 받았던 그 고모로 원액의 맑음과 아름다움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7월 4일

이안 창의 이야기는, 하나의 실 — 이어지는 것 — 으로 묶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승에게서 받고, 자신의 손으로 키우고, 아픔과 함께 놓아 보내고, 새로운 제로로 돌아간 것.

그리고 이제, 건네는 사람이 된 것.

해발 910미터의 숲에서, 이안 씨는 오늘도 다음 세대를 위해 오크통을 채우고 있습니다.

결코 만나지 못할 누군가를 위해, 나무를 심고 있습니다.

히로시마 Bar Little Happiness에서 열린 이안 창 테이스팅 행사

7월 4일, 저희는 그를 Bar Little Happiness에 맞이했습니다. (이 글은 그날 이전에 쓴 것입니다. 그날 밤의 기록은 아래의 테이스팅 시리즈에 담았습니다.)

그가 만든 고모로의 뉴본을, 그 자신의 말과 함께 맛보는 밤.

그저 맛있는 것을 마시는 밤 이상의 시간이었습니다.

만든 이의 마음을 알면, 술은 더 맛있어지니까요!


아버지의 병, 그리고 우연히 집 근처에 있던 카발란의 문을 두드린 것.

숙성고 안에서 위스키의 로맨스를 만난 것.

짐 스완 박사라는 스승을 만난 것.

그리고 그 모든 길의 끝에서, 일본의 고모로 증류소와 이어진 것.

하나하나는 우연처럼 보이지만, 돌아보면 모두가 하나의 선에 꼭 필요한 부분이었습니다. 이것을 “필연” — 처음부터 그렇게 될 일이었다 — 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제가 고모로에 간 것도, 이안 씨가 제 블로그를 발견한 것도 — 둘 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분명 위스키가 우리에게 데려다준 것이고, 처음부터 그렇게 될 일이었을 것입니다……

만남은 필연. Rum&Whisky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히로시마를 찾은 고모로 증류소의 마스터 블렌더 이안 창 씨

Bar Little Happiness / 위스키와 럼의 수첩

위스키도 럼도, 만든 이의 마음에 닿을 때 더 맛있어집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래의 블렌더 시부야 씨에게.

아주 미묘한 뉘앙스까지, 하루 종일 통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분명 완전히 지치셨을 거예요.

이안 씨가 건네는 것을 이어받아, 다음 누군가에게 건넬 사람.

이 멋진 시간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신 덕분입니다.

당신이 만든 위스키를 마시는 날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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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창(전 카발란, 현 고모로 마스터 블렌더) 스페셜 테이스팅, 2026년 7월 4일 히로시마 Bar Little Happiness


예약·문의는 Instagram DM으로.


【이 글을 쓴 사람】

다니모토 미카(谷本美香 / Mika Tanimoto)
주식회사 Little.m 대표 / 오너 바텐더

2006년부터 히로시마 나가레카와에서 위스키와 럼 전문 바 「Bar Little Happiness」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본 국내외의 증류소를 찾아가 만든 이들의 이야기를 칼럼으로 쓰고 있습니다. 히로시마시 우수기능자.

「위스키도 럼도, 만든 이의 마음에 닿을 때 더 맛있어집니다.」

【가게 정보】📍 Bar Little Happiness

히로시마시 나카구 나가레카와초 5-14 Rolling나가레카와 1F
월~토 19:00~24:30 / 일 19:00~24:00 (증류소 방문 등 여행 중에는 휴무)
테이블 차지 없음 · 예약 불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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