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에 진료소를 지은 이야기 — 케이프코스트성과 럼 | 스무 개의 기억 Vol.6
2026.10.06
Thanks 20th Anniversary 스무 개의 기억 Vol.6
지난 이야기
vol.2 20년째의 원점 회귀. ‘눈앞의 한 사람’을 감동시킨다는 것.
vol.4 [모든 것은 필연] 9년 전의 기사가 이어 준, 하룻밤
가나에 진료소를 지은 이야기
“인정받고 싶어서 그런 거지?”
“돈 낭비 아니야?”
“가나에 진료소를 지었어”——
이렇게 말하면, 이런 말들이 돌아왔습니다.
당시 젊었던 저는, 그 말들에 너무 귀를 기울였습니다.
정말로, 너무 기울였어요.
그래서 꽤 오랫동안 이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채 지내 왔습니다.
20년을 돌아보는 이 고비에, 다시 한번 적어 보려 합니다.
무언가를 남겨 두고 싶었다
예전부터 봉사 활동 같은 것을 좋아했습니다.
뭔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마음이 마음속 깊은 곳에 늘 있었습니다.
창업 7주년을 맞은 2012년.
저는 28살이었습니다.
창업 후 7년 동안 따뜻한 인연에 둘러싸여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했고, 그 마음을 어떤 형태로든 남길 수 없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던 때 만난 것이, 아프리카 가나의 마을에 진료소를 짓는다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 진료소는 저에게, 여기까지 열심히 해 온 증거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가져갈 수 있는 저금을 전부 써서.
어딘가 스토익하게, 해내고 싶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나에서, 제가 본 것


아이들은 제가 가져간 선물을 순수하게 기뻐해 주었습니다.
마을에서는 성대한 환영회를 열어 주었고, 왕들까지 한자리에 모여 주었습니다.

환영의 의미로, 염소를 받았습니다.
……받기는 했는데, 이걸 어쩌라고?! (웃음)



제가 지은 것이, 정말로 그곳에 있었습니다.
세계의, 아주 작고 한정된 장소.
그래도 조금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서, 무척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순수한 마음과, 눈앞의 현실
하지만 그곳에서 본 것은, 제 상상과는 달랐습니다.
마을 아이들을 위해 가져간 선물.
그것을 프로젝트에 관여하는 현지 멤버가 자기 가방에 넣고 있었습니다.
“다음엔 우물을 파 달라”며, 둘러싸여 간청을 받았습니다.
현지 아이들은 천보다 구멍이 더 많은 게 아닐까 싶은 옷을 입고 있는데, 이 프로젝트에 관여하는 어른들은 화려하고 깨끗한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이게 바로 빈곤 비즈니스라는 것인가.
말로만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거죠.
순수한 마음으로 왔을 터인 저는, 눈앞의 현실에 마음이 답답해졌습니다.
잘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현지 가이드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니세프를 비롯해 여러 지원 단체가 여러 가지를 지어 간다.
하지만 짓기만 하고 끝나 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제가 지은 진료소도, 그럴지도 모른다.
빈곤 비즈니스의 아주 작은 일부였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하길 잘했다
일본에 돌아온 뒤에도, 그 말들은 계속 제 마음에 박혀 있었습니다.
“인정 욕구”.
“돈 낭비”.
“의미 없어”
순수한 마음으로 움직였을 텐데.
그것이 누군가의 눈에는 다르게 비친다.
가나에서 본 현실과, 일본에서 들은 말.
둘 다 제 안에서 오랫동안 사라져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번지르르한 말만 늘어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보다.
볼품없어도, 틀려도, 움직인 나로 있고 싶다.
그 마을에 가길 잘했다.
그 진료소를 짓길 잘했다.
지금은 분명하게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여행에는, 잊을 수 없는 곳이 하나 더 있었다


진료소 이야기에는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같은 여행 도중에, 케이프코스트라는 곳에 갔습니다.
수도 아크라에서 차로 약 3시간 30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바닷가의 성입니다.

지금은 아름다운 성처럼 보입니다.
푸른 바다를 등지고, 어부들이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기잡이를 이어 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한때, 노예를 가두고 “출하”하던 곳이었습니다.
지하 감옥에 들어가면 정말 캄캄해서, 위쪽에 난 구멍만이 이상할 만큼 빛나고 있었습니다.
앉을 수조차 없을 만큼 빽빽하게 채워져서.
이곳에 갇힌 사람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고 합니다.




원래는 목재와 금 무역을 위해 지어진 건물이었습니다.
그것이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노예무역에 쓰이게 되었습니다.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출하”되어 갔던 것입니다.
인생은, 이어져 있다
이 성에서 저는 삼각무역이라는 것의 현실을 알았습니다.
유럽, 아프리카, 그리고 카리브해를 이은 그 무역.
하지만 당시의 저에게는, 아직 그저 관광 명소였습니다.
럼 가게를 만들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으니까요.
이 삼각무역이야말로, 럼을 세계로 퍼뜨린 뿌리였다.
그것을 제 일로서 알게 된 것은, 조금 뒤의 일이었습니다.
2, 3년 뒤, 저는 럼을 메인으로 하는 가게를 열게 됩니다.
그 가게는 문을 닫았지만, 그때 모으기 시작한 럼은
지금도 Bar Little Happiness의 보틀 선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럼의 탄생을 이야기할 때마다, 반드시 그 삼각무역에 다다릅니다.
그때 비로소, 이어진 것입니다.
그 가나에서 “가는 김에” 들렀던 성이,
지금 제 일의 가장 깊은 곳과 이어져 있었다고.

그 성에서, 또 하나 생각한 것
예전에 이 성을 방문한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악을 용인하고 그것을 지지하기도 하며, 옳다고 믿고 스스로 손을 더럽히기까지 한다”
옳다고 믿은 것이, 옳다고는 할 수 없다.
이 말은 그 후로도 계속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예를 들면, 경영에서도
경영자로서도, 저에게는 저의 정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모두의 정의라고는 할 수 없다.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기보다, 정하고 움직이는 쪽을 택해 왔습니다.
나의 옳음을 의심하면서.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세상을 이 손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경영도, 그 진료소도, 분명 같았습니다.
모든 것은, 필연이었다
가나에서 마주한, 순수한 마음과 현실의 간극.
노예무역의 성에서 알게 된, 인간의 잔혹함.
삼각무역이 세계에 퍼뜨린 럼.
나의 옳음을 의심한다는 것.
뿔뿔이, 제 20년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돌아보면.
그 하나하나가 지금의 저를 분명히 만들어 가고 있다.
가나의 진료소도, 경영도.
둘 다 처음에 그렸던 것과는 다른 결과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하길, 잘했다.
지금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필연”이었다고.
이것이 저의, 가나의 기억.
(경영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 자세히 적어 두었습니다.)
Thanks 20th Anniversary 스무 개의 기억 Vol.6
만남은 필연. Rum&Whisky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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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 숍: https://shop.little-happiness.jp/
Definitely very recommended, I hope to be able to come back here in a future Japan trip! Thank you so much, cheers from Italy!
【이 글을 쓴 사람】
다니모토 미카(谷本美香 / Mika Tanimoto)
주식회사 Little.m 대표 / 오너 바텐더
2006년부터 히로시마 나가레카와에서 위스키와 럼 전문 바 「Bar Little Happiness」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본 국내외의 증류소를 찾아가 만든 이들의 이야기를 칼럼으로 쓰고 있습니다. 히로시마시 우수기능자.
「위스키도 럼도, 만든 이의 마음에 닿을 때 더 맛있어집니다.」
【가게 정보】📍 Bar Little Happiness
히로시마시 나카구 나가레카와초 5-14 Rolling나가레카와 1F
월~토 19:00~24:30 / 일 19:00~24:00 (증류소 방문 등 여행 중에는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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